독서일기(인문)

귀환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0. 7. 30. 20:48

임철규 교수가 쓴 평론집 <귀환>을 읽었다. 지인이 춴한 책이다. 저자는 연세대학교 비교문학과 교수를 거쳐 명예교수로 있다. 이 책은 귀환을 주제로 정지용, 김규동, 성원근의 시 몇 편, 임권택의 영화 '창', 이창동의 영화 '밀양', 박경리의 소설 '토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오뒤세이아' 및 비전향장기수를 다룬 이북 소설을 분석한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 머물고 있는 '지금-여기'가 고통으로 남아 있는 한, 떠나온 고향을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욕망이다.

 

향수병을 앓고 있는 모든 이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치유도 없었다.

 

노스탤지어는 과거를 이상화함으로써 과거를 왜곡시킨다.

 

칸트도 노스텔지어의 본질을 파악하여 고향을 애타게 그러워하는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이 진정 돌아가고 싶은 것은 특정 장소, 그의 어린 시절의 고향 땅이 아니라 특정 시간, 즉 그가 고향땅에서 보낸 바로 그의 어린 시절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지나간 시절은 더 이상 되돌릴 수도 없고 되찾아질 수도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이 고향땅에 돌아간다고 해도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키르케고르는 우리는 우리가 그리워하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떠나온 우리의 고향은 그때와 똑같은 장소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각 개인은 저마다 자신만의 낙원, 자신만의 황금시대를 가지고 있다(실러)

 

정지용의 '자신만의 황금시대'는 '향수'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 있듯, 인간이 자연이 되고 자연이 인간이 되는, 인간과 자연과 동물이 공감하고 함께 어울리는, 블로흐의 용어를 빌리자면, "인간의 자연화, 자연의 인간화'가 이루어지는 이른바 "동일성의 고향"이다.

 

당대의 현실과 별천지인 그의 어린 시절 고향, 농촌을 이상화하는 시 '향수'에 의해 역설적으로 확인된다. 그는 이 시에서 모든 예술의 고유한 역설, 즉 현실로부터 거리두기는 동시에 그가 그 현실을 강조하고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역설을 행하고 있다

 

아도르노는 자신처럼 '뿌리 뽑힌'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니 자신처럼 "더 이상 고향이 없는 자에게는 글쓰기야말로 거주지가 된다"고 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원래 방언"이었으며 "방언은 어머니의 언어일 뿐 아니라 언어의 어머니"라고 주장한 바 있다.

 

김규동이 '분단의 사슬을 문제 삼지 않고는 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자각을 갖게 된 것이다"했을 때, 그에게 분단의 극복이란, 다름 아닌 바로 어머니와 재회하는 것이었다.

 

삶이 두렵다고 해서 죽음이 익숙해지는 것도

죽음이 두렵다고 해서 삶이 편안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낯설고 낯설음

-성원근 '탈주범의 모놀로그 11'

 

몽테뉴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죽으면 나는, 그리고 나와 관계되는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 의미 있는 차이, 나 아닌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의미 있는 일을 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차이를 세상에 남기지 않으면 나는 나의 죽음과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가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미래의 공동체는 인간을 자연에 묶는 공동체가 아니라, 인간을 인간에 묶는....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암시했다. 그는 '인간을 인간에 묶는 공동체' 비전이 도스토옙스키에 나타나고 있음을 암시하면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맺는다.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물의 모습은 그 단순함과 친숙함 때문에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다(비트겐슈타이)

 

토지에서 박경리는 이 나라뿐 아니라 최 참판가의 사람들, 그리고 최 참판가와 연관된 모든 사람이 시대와 더불어 운명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프로이트는 사랑보다 더 오래된 것이 증오라 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체의 이성적 고려가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분노는 증오보다 더 무섭고 더 위험하다고 했다.

 

박경리가 갈망하는 이상향의 터가 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연민이다.

 

사람에게 가장 강한 본능이 생존본능이라면 이 본능보다 강한 것이 생명에 대한 연민인지 모른다(<토지>중에서) .

 

대작은 장르를 수립한다든가 아니면 이를 폐기한다든가 할 것이다. 그리고 완벽한 작품은 이 두개를 다 행할 것이다(발터 벤야민)

 

제우스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할지라도, 그가 인간인 한 어떠한 자도 죽음을 비껴갈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죽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일리아스나 오뒤세이아에서 거듭 등장하는 모티브다.

 

자신에 대한 배려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보다 윤리적으로 앞선다(푸코)

 

그가 머물고 있는 수선화 피는 초원을 향해 걸어가는 아킬레우스와 이별하고 지상으로 올라온 오뒤세우스는 어떠한 삶도 죽음보다는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을 향해 흘러가는 짧은 삶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덧없는 삶 속의 인간도 덧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한순간이라도 빛나는 삶에 자신을 맡기는 것, 이것이 가장 귀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평론의 참 맛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분석대상으로 삶은 책도 덩달아 읽는 기분이 든다. 일독을 권한다.

 

                 2010. 7. 30.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