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0. 6. 13. 22:16

이어령님이 쓴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읽었다. 뉴질랜드에 사는 아내 친구가 우리 부부에게 선물한 책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지성계를 대표하고 무신론자였던 저자가 딸의 실명 위기를 계기로 세례를 받게 된 과정, 세례 후 삶의 변화를 담고 있다. 끝에 개신교 신자로서 미국에서 검사, 변호사로 활동한 딸의 간증도 덧붙이고 있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원래 문화란 말은 文治敎化의 준말입니다. 무력이나 금력이 아니라 글의 힘으로 상대방을 교화시켜 다스리는 방법이 곧 문화란 말의 원뜻이었습니다.

 

세례를 받기로 결심한 뒤에 많은 고민을 했지만 한 가지 다행스러웠던 것은 만두를 맛있게 먹으려면 통째로 씹어

먹어야 한다는 평범한 상식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요.

 

기독교는 이성과 지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지성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리적 신진대사를 돕는 양분의 섭취가 아니라 존재와 존재를 결합하고 일체화하는 융합의 행위인 것입니다.

 

정치와 경제의 두 원리(평등, 자유)를 대립이 아니라 조화로 이끌어간 것은 프라테르니테(동지애)였지요. 기독교에서 가장 중시한 사랑. 그래서 한자문화권에서는 자유 평등과 함께 동지애를 박애라고 번역했던 겁니다.

 

죄에 대한 징벌과 사랑에 의한 구원이 모순하는 행위가 하나가 된 것이 예수의 십자가이지요.

 

의문은 지성을 낳지만, 믿음은 영성을 낳습니다.

 

사망이 죄의 값이라면 갓 태어난 아이의 죽음은 어떻게 설명하시렵니까?(이반) / 그것은 이미 2천 년 전에 끝난 이야기다. 아이보다도 더 순결한 예수님이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지 않았는가(조시마 신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중에서)

 

동물의 세계에는 새끼를 낳아 기르는 어미는 있어도 인간과 같은 아버지의 존재는 드뭅니다. 그래서 "인간의 가족제도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창조한 그 순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로맹롤랑은 인생이란 15분 늦게 들어관 영화관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자가 무신론자 시절 기독교를 이해했던 것과, 세례를 받고 나서 느끼게 된 것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 있다. 종교에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2010. 6. 13. 부산에서 자작나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