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책에대한 책)

김경집의 <책탐>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0. 1. 16. 20:45

김경집의 <책탐>을 읽었다.저자는 삶을 세 등분으로 나눠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글쓰며 살기를 꿈꾸는 인문학자라고 한다. 이 책은 책 제목 그대로 책탐이 많은 저자가 책을 읽고 난 뒷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재미 있는 건 공통점이 있는 두권의 책을 비교하며  소감을 풀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의사로서 혁명가의 삶을 산 이야기 <닥터 노먼베쑨>, <체게바라 평전>을 '두 의사의 길, 세상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라는 소제목 하에 소개하는 식이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루소는 나무가 혼자서는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인간 또한 혼자서 살 수 없고, 대지에 박힌 나무의 뿌리가 원초적인 힘들을 빨아올려서 스스로를 정성스럽게 가꾸는 것이야말로 교육이 지향하는 방향이라고 설정했다. 그래서 루소는 "인간은 천상의 나무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여행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생각의 이동이다(프랑수아 모리악)

 

길을 아는 사람에게 너의 길을 묻지 말고 너처럼 길을 찾는 사람에게 물어라(엘렌 그리모)

 

수필의 진정한 가치와 힘은 진정성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부단히 친구를 찾아다니는 과정이다(쟈핑와의 수필 '친구' 중에서)

 

철학자 존 롤즈가 <정의론>에서 가장 중요한 도덕적 근거와 목적이 바로 '자존감'이라고 강조한 것이 새삼 떠오른다.

 

특히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체게바라)

 

모든 진실된 인간은 다른 사람의 뺨이 자신의 뺨에 닿는 것을 느껴야 한다(체게바라)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 속에서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사실 체게바라가 이 말을 하지는 않았다. 게바라에 대한 글에서 따온 문장이다)

 

살아 있는 자들은 투쟁하는 자들이다(빅토르 위고)

 

엠마뉘엘 수녀는 '사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된다는 믿음을 끝까지 실천했고, 자신이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했음을 겸손하게 신에게 감사했다.

 

비가 계속되어 땅 속의 종자들이 썩고 낮은 지대에서 감사 농사를 망치더라도 높은 지대의 풀에게는 좋을 것이며, 풀에게 좋다면 나에게도 좋은 것이다(소로우의 <월든> 중에서)

 

양파 껍질처럼 아무리 벗겨도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그 껍질들이 양파 자체인 것처럼 오스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바로 세상이고, 관계라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된다.

 

작가의 권위와는 별도로 독자의 창조적 오독이 허용된다는 포스트모던 이론을 굳이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독자는 언제든 저자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삶이 꼭 작품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물론 때로는 그런 점들이 많이 드러날 수밖에 없지만, 위대한 작가와 작품은 그런 것들조차 보편적 인간사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게 바로 문학의 힘이며 가치다.

 

직유보다 은유가 훨씬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그게 상상력이고 창의력이며,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공공건축은 문화적인 일이다. 한 사회의 문화적 지표가 되고 나아가서는 삶이 문화로 전환되는 것이기 때문에, 건축이 문화가 되게끔 이끌어갈 수 있는 원칙과 능력, 책임이 따라야 한다.

 

무주군 안성면 주민자치센터는 바로 주민이 원했던 건축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에 최초로 목욕탕이 딸린 면사무소가 지어진 것이다(정기용의 <감응의 건축> 중에서).

 

토마스 쿤은 분명 과학혁명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과학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통해 과학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를 버려야만 올바른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와인버거는 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사람을 창조하는 법이라며,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우리는 새로운 인간이 된다고 말한다.

 

인터넷공간이란 불완전하지만 계속해서 자기 수정과 개선을 통해 다양성과 자유를 낳는 본적지다.  

 

인터넷은 인간의 진실성을 향해 움직인다(와인버거)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얼마나 책탐이 많은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이를 넘쳐도 되는 욕심이라고 표현한다. 책을 읽는 즐거움, 책을 통해 인간이 완성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일독을 권한다.

 

                2010. 1. 16.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