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책에대한 책)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9. 11. 26. 22:35

유시민님의 '청춘의 독서'를 읽었다.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이 책은 자칭 지식소매상 유시민님이 청년 시절에 감명 깊게 읽었던 14권의 책을 50살이 된 지금 다시 읽고 쓴 일종의 독후감이다. 청년 시절에 그 책을 읽게 된 계기, 그 때 읽고 난 소감을 밝히고, 50살이 된 지금 다시 읽은 소감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를 드러내고, 그의 지향을 말하는 것으로 매듭짓는다.

 

14권의 책은 다음과 같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맬서스의 <인구론>, 푸시킨의 <대위의 딸>, 맹자의 <맹자>, 최인훈의 <광장>, 사마천의 <사기>,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다윈의 <종의 기원>,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아무리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악한 수단을 사용한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도스토옙스키)

 

맬서스에 의하면 사회적 불평등과 하층민의 빈곤은 인구법칙이라는 자연법칙의 필연적인 결과로 된다. 따라서 하층민의 고통은 그들 스스로의 책임이며 이를 개선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자연의 질서를 거역하는 것이며 무위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이 낳은 1795년의 <인권선언>은 페인의 주장을 반영하여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모든 시민은 동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힘든 날들을 참고 견뎌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알렉산드르 푸시킨)

 

인간은 모두 똑같이 존엄한 존재입니다(푸시킨의 대위의 딸 중에서).

 

처음 <사기 열전>을 읽었을 때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울린 비극적 죽음의 주인공은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를 남긴 명장 한신이었다.

 

사기를 다시 살펴보면서 나는 한신의 죽음이 적응의 실패에서 온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것은 단순한 인간적 비극이 아니라,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가 말한 것처럼 역사에서 일어나는 '역할의 전도' 현상에 한신이 적응하지 못했거나 적응을 거부함으로써 일어난 사건이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니콜라이 네크라소프)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강제에서 자발적 협력으로,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단순성에서 다양성으로 가는 것이 사회 진화의 정향성이라는 것이다

 

베를런에 따르면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돈으로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하는 경쟁심 때문이다.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해 소비함으로써 만족을 얻는 데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는 것이 돈을 버는 목적이다.

 

베블런은 야만 문화 전체를 통틀어 사회를 지배한 집단에게 유한계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회의 진화는 개인이 어쩔 수 없이 변화한 상황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받아들이는 정신적 적응 과정이다.

 

보수주의는 상층계급의 특징이기 때문에 품위가 있는 반면, 혁신은 하층계급의 현상이기 때문에 저속하다(베블런)

 

지주의 불로소득을 조세로 징수하고 그 대신 다른 모든 세금을 폐지하는 것이었다. 조지의 아이디어는 '토지 단일세 운동'이라는 사회운동으로 발전했다.

 

진보와 빈곤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경제활동과 인간 생활의 중심지 땅을 가진 사람이 모든 진보의 열매를 독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똑같이 창조주의 허락을 받아 이 땅에 존재한다면, 우리 모두는 창조주의 하사품을 향유할 동등한 권리가 있다(헨리 조지)

 

내가 밝히려고 했던 그 진리가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다. 그게 쉬울 것 같으면 이미 오래전에 받아들여졌을 것이며, 결코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분투하고 고난을 감수하며 필요하다면 죽기까지 할 진리의 벗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진리의 힘이다(헨리 조지 묘비명)

 

뵐은 후기에서 (신문 헤드라인의) 폭력이 무지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무지란 처지를 바꾸어 놓고 생각해보는 능력의 전적인 결여를 의미한다.

 

헤드라인이 신문의 일상적 무기라면, 작가에게는 때로 소설이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대는 신문 헤드라인을 진실이라고 믿습니까('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 카타리나 블룸이 묻는다)

 

랑케는 과거를 원래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는 발전하거나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리저리 변화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사실이라는 것은 역사가가 불러줄 때만 말을 한다.....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과거에 속하기 때문에, 이 상호작용은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 관계를 아울러 내포하고있다.....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라는 것이다......만일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들어갈 수 없다고 한 철학자의 말이 옳다면, 한 역사가가 같은 책을 두 번 쓸 수 없다는 말 역시, 같은 이유로 진실일 것이다(E. H. 카)

 

역시 유시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번 들면 놓칠 수가 없다. 출근 전에도 짬을 내서 읽고, 자기 전에 짬을 내서 읽고 해서 2일만에 다 읽었다. 일독을 권한다. 15권의 책을 읽는 느낌이 들 것이다.

 

                       2009. 11. 26.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