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9. 12. 21. 20:20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읽었다. 그리스 철학부터 논리분석철학까지 서양철학을 개괄하였다. 시대의 배경을 먼저 살핀 다음, 철학자와 주장의 요지를 소개하고, 어느 철학자를 승계하고, 어느 철학자에게로 이어졌는지 철학의 계통을 밝혔으며, 해당 철학의 한계를 냉정하게 언급하였다. 러셀은 이 책 등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기호 논리학을 확립하였고, 비트겐슈타인으로 이어지는 분석철학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사회적인 면에서 과학의 힘을 믿는 무신론자이고 개혁적 자유주의자로서 인권과 시민권을 옹호하기 위해 권력과 맞서 싸웠다. 천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나, 인상 깊은 구절은 추리면 다음과 같다.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실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자리 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는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 무인지대(No Man's Land)가 바로 철학의 세계이다.

 

기원전 600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발전을 거듭하면서, 철학자들은 사회 결속을 강화하려는 자와 풀려는 자로 나뉘었다.

 

수학과 더불어 그리스  정신의 일방적인 면이 드러난다. 말하자면 자명해 보이는 공리에서 시작하여 연역적으로 추론하지만, 관찰한 것에서부터 귀납적으로 추론해나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어떤 철학자를 연구할 때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는 그를 숭상하지도 경멸하지도 말고 이론 가운데서 믿을 만한 점을 알아낼 때까지 우선 일종의 가설로서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다......경멸은 가설로서 공감을 표현하는 데 방해가 되며, 숭상은 비판적 태도의 회복에 방해가 된다.

 

당신이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까닭은 늘 새로운 강물이 당신에게 흘러들기 때문이다(헤라클레이토스)

 

객관적 진리를 불신하게 되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는 다수가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프로타고라스는 법과 관습과 전통 도덕을 옹호한다. 

 

나는 만약 여러분이 나를 죽이게 되면 나를 해치는 것보다 여러분 자신을 더 많이 해치게 된다는 점을 아셨으면 합니다. 아무도 나를 해칠 수 없을 것입니다. 멜레토스도 나를 해칠 수는 없지요. 악한 사람은 자신보다 더 선한 사람을 해칠 수 없는 법이니까요. 아마 아니토스는 자신보다 선한 사람을 죽이거나 추방하거나 시민권을 박탈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 다음 다른 이들은 선한 사람을 몹시 해친다고 상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니토스가 저지른 악행, 다른 사람의 생명을 부당하게 빼앗는 악행이 훨씬 더 악한 짓이기 때문이지요(소크라테스의 변론).

 

정의는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몫을 일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데서 실현된다고 한다(플라톤의 국가론 중에서).

 

우리는 누구에게 어떤 고통을 당하게 되든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소크라테스)

 

어느 덕이나 양 극단의 중용이며, 양 극단은 각각 악덕에 속한다(아리스토텔레스). 이 학설은 갖가지 덕을 검토한 끝에 입증된다. 용기는 비겁과 만용의 중용이다.....겸손은 수줍음과 파렴치함의 중용이다. 그러나 덕은 양 극단의 중용이라는 도식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데, 예컨대 진실성이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실성이 허풍과 거짓 겸손의 중간이라고 말하지만, 이 말은 단지 자신에 관한 진실성에만 적용된다. 넓은 의미의 진실이 어떻게 양 극단의 중용이란 도식에 맞추어지는지는 모를 일이다. 

 

행복은 유덕한 행동에 달려 있고, 완벽한 행복은 최선의 활동인 관조에 달려 있다. 관조가 전쟁이나 정치나 다른 어떤 실천 경력보다 더 나은 까닭은 삶에 여유를 주기 때문이며, 여유는 행복의 본질적 요소이다(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혁명이란 모름지기 재산을 규제하는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라는 근거로 시민의 정치적 평등을 바람직한 일로 생각하는 주장의 논증을 거부하면서 가장 큰 죄악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어느 누구도 추위를 피하려 폭군이 되지는 않는다.

 

에피쿠로스는 실제로 현자의 목표는 쾌락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없애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미움은 악이다. 미움은 늘 거짓말과 짝을 이루는 까닭이다(12족장의 유언서 ; 유대교)

 

과거에 일어나는 일들의 현재는 기억이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현재는 눈 앞에 펼쳐지는 일이며, 미래에 일어날 일들의 현재는 기대이다(아우구스티누스) 

 

성 바울로의 성서 구절에서, 악한 자들은 사악하기 때문에 신의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 신의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악해진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듯하다.

 

죄의 근원은 자유에 있다.......악은 선의 결핍일 뿐이다.

 

더 작은 수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큰 수로 하는 짓은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오컴)

 

근대 철학은 대부분 개인주의와 주관주의적 경향을 그대로 간직했다.

 

정직한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유일하게 영광스러운 길은 순교를 택하거나 아니면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다.

 

과학자를 과학자답게 구분해주는 특징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왜 그것을 믿느냐에 달려 있다.

 

베이컨은 이중진리 즉 이성의 진리와 계시의 진리를 둘 다 인정한 학설을 지지했다.

 

베이컨의 귀납적 방법은 가설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한 결점을 안고 있다......이런 가설이 없는, 복잡하고 잡다한 사실들의 집합은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홉스는 군주제를 선호한다. 그는 의회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정부 권력을 왕과 의회가 나누어 갖는 정치체제는 인정하지 않는다......논리적으로 도출된 홉스의 예외적 주장이 하나 있는데, 개인은 자신을 보호해줄 만한 권력을 잃은 군주에게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는 결론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주장은 물질보다 정신을, 타인의 정신보다 나의 정신을 더 확실한 존재로 만들었다.

 

유한한 사물은 물리적이거나 논리적인 한계, 말하자면 자신이 아닌 사물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에 "모든 규정은 부정이다".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유일한 존재는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는 희석되지 않은 순수하고 완벽한 범신론으로 이끌린다.

 

자유로운 인간은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명상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스피노자)

 

사회가 복수를 허용한다면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경우에 대해 재판관의 위치에 서게 되는 셈인데, 이것은 바로 법률이 금하려는 내용이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모든 죄는 무지에서 비롯되므로, 그는 "저들이 한 일을 모르기 때문에 저들을 용서하라". 그러나 그는 당신이 죄의 원천으로 보이는 제한된 시야에서 벗어나라고, 아무리 큰 불행이 닥쳐도 슬픔의 세계에 갇혀 지내지 말라고 권고했으리라.

 

사랑의 힘으로 극복한 증오심은 사랑의 감정으로 옮아가는데, 이런 사랑은 증오심을 먼저 경험하지 않은 경우의 사랑보다 더욱 위대하다(스피노자)

 

자유의지는 훌륭한 선인데, 신이 자유의지를 부여하는 동시에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명령하기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므로 신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게 되리라고 예견했으며, 죄에는 벌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인간을 자유인으로 창조하기로 결정했다(라이프니츠).

 

나는 양 극단 사이에 진실이 놓여 있다고 믿는다.

 

정치 권력에 관해서는 상속 원리를 거부하지만 경제 권력에 관해서는 상속 원리를 수용한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사상을 처음 고안한 사람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나머지 당대의 모든 사람에게 바보 취급을 받게 마련이다.

 

로크의 법 이론은 개인의 권리가 국가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는 견해에 기초한다.

 

정의롭지 못한 불법적인 힘에 저항할 경우를 제외하면 어떤 경우에도 힘으로 맞서서는 안 된다(로크)

 

일반적으로 말해 종교에서는 오류가 위험하지만, 철학에서 오류는 재미있을 뿐이다(흄)

 

18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예술, 문학, 철학, 심지어 정치학도 넓은 의미의 낭만주의 운동의 특징인 감정이나 격정에서 영향을 받았다......낭만주의 운동을 최초로 이끈 위대한 인물은 루소이지만, 그는 단지 이미 존재하던 낭만주의 경향들을 일정한 한계 내에서 표현했을 뿐이다.

 

낭만주의 운동의 본질은 인간의 개성을 사회적 규약과 도덕성의 족쇄에서 자유롭게 하려는 목표에 있다.

 

루소는 연령, 건강, 지능 들의 자연적 불평등에 반대하지 않으며, 다만 관습이나 관례에 따른 특권의 결과로 생긴 불평등에 반대할 따름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목적은 우리의 지식이 경험을 초월할 수 없지만, 일부는 선험적이어서 경험에서 도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벤담이 채택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원리는 분명히 민주주의적 감각에서 비롯되었으나 인권의 학설에 대립하는 측면도 포함하는데, 그는 둔하게도 인권의 학설을 무의미한 이론으로 단정했다. 

 

동양에서는 한 사람만이 자유로웠으며, 현재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세계에서는 몇사람이 자유로웠으며, 독일인의 세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진다(헤겔)

 

국가와 국가는 서로 자연상태에 있으므로 국가와 국가의 관계는 합법성이나 도덕과는 거리가 멀다(헤겔 ; 반면, 칸트는 이성의 편에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단호히 반대하며,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국제정부의 결성이라고 주장한다)

 

슬픔은 지식에서 비롯되지

가장 많이 아는 자 치명적인 진리를 넘어 가장 깊은 슬픔으로 비통해하네.

지식의 나무는 생명의 나무가 아니라네(바이런).

 

의지가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는 학설은 여러 현대 철학자들이 주장했는데, 그 가운데 니체, 베그르송, 제임스와 듀이가 두각을 나타냈다.

 

니체의 견해로는 다수는 단지 소수의 탁월한 능력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이 되어야 하므로, 독자적으로 행복이나 복지를 주장하는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는 여기저기서 평범한 인간을 섣부른 자라고 말하며..

 

니체는 금세기(19세기)에 등장한 고귀한 희망은 거의 대부분 나폴레옹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범죄자를 증오하기 때문이 아니라 범죄를 막기 위해, 인간은 형법에 따라 처벌받게 된다. 가혹한 처벌보다 확실한 처벌이 중요하다(벤담)

 

벤담의 이상은 에피쿠로스와 마찬가지로 자유가 아니라 안전이었다.

 

베르그송은 최고 상태에 이른 본능을 직관이라 부른다.

 

러셀은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당대 뿐만 아니라 중세, 근대, 현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근대 이후 개혁을 자처하는 사람은 로크를 지지하는 사람과 루소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는 점을 비롯하여 철학의 계통을 일관되게 밝힌다. 루소와 볼테르의 사이가 아니 좋았고, 쇼펜하우어는 어머니와 사이가 않 좋았던 경험이 여성비하의 주장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는 이야기 같은 철학자들의 일상들을 읽는 것도 이 책의 즐거움이다. 다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것을 기대한 바도 없었지만, 무턱대고 다 읽고 나니 뭔가가 남아 있는 느낌이다. 일독을 권한다. 넉넉하게 시간을 내야 하겠지만...

 

                        2009. 12. 21.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