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9. 11. 8. 18:31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읽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는 떠돌이에서 소지주로 자수성가한 남자인데 호색한이다. 그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다.

전처인 아젤라이다 이바노브나와 사이에 낳은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미차), 후처인 소피아 이바노브나와 사이에 낳은 이반 표도로비치, 알렉세이 표도로비치(알료샤), 거지 여인에게서 낳은 사생아 스메르자코프가 있다. 이들은 여러 가지 관계로 얽히고 설킨다. 우선 표도르와 미차는 그루센카라는 늙은 상인의 첩과 경쟁하는 관계다. 미차와 이반은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카차)라는 중령의 딸과 삼각관계다. 즉 카차는 미차의 약혼녀인데 결국 이반은 사랑하게 된다. 스메르자코프는 표도로의 자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 집의 요리사로 일하면서 정실의 자식인 나머지 3형제와 비열한 방법으로 경쟁한다. 

 

이런 가운데 표도르가 피살되고 그의 돈 3,000루블이 강탈당한다. 2/3을 읽을 때까지도 나는 그 범인이 미차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그 사건은 스메르자코프가 독자인 나까지 속이며 치밀한 계획하에 저지르고 함정을 파서 죄를 미차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다. 스메르자고프가 범행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이반의 이론을 믿었기 때문이다. 미차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시작되었고, 배심재판과정에서 유능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미차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었으나 카차가 법정에서 환각증을 일으킨 이반을 보고 태도를 돌변하여 드미트리의 유죄를 강하게 의심할 수 있는 편지를 공개함으로써 드미트리에게 유죄평결이 이루어진다.  

 

수사 및 재판의 묘사가 매우 세밀하고 정확한 것은 작가가 사회주의 이념 서클에 가입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경험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3형제는 당시 러시아의 인물유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드미트리는 무능하면서도 고결한 감정을 가지는 귀족들의 유형을, 이반은 서구사상에 해박하면서도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무신론자의 유형을, 알료샤는 기독교적 사랑으로 공동체를 끌어안는 사람들의 유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이 소설 마지막에 알료샤가 소년들과 함께 일류샤의 장례식에 참가하는 장면을 배치함으로써 이들이 러시아를 이끌고 갈 주역임을 암시한다. 이 소설에서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만일 현대에 있어서도 사회를 보호하고 범죄자를 교도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갱생시킬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역시 죄인의 양심 속에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계율뿐일 것입니다.

 

당신을 여기 보낸 분에게 이 수세미는 결코 자신의 명예를 파는 사람이 아니라고 전해 주십시오

 

일단 인생이라는 이 커다란 술잔에 입을 댄 이상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셔 버리기 전엔 결코 입을 떼지 않겠어!

 

인생의 의미보다 삶 그 자체를 사랑한단 말이겠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인간은 어느 누구의 심판자도 될 수 없다는 것을 특히 명심하라......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심판자가 될 수 있다.

 

난 같은 말을 두 번 되묻는 걸 싫어해. 난 처음의 한마디로 이해하는 사람이 좋아.

 

맹세해도 좋지만 그 섬세함이란 작가인 레프 톨스토이도 쓸 수 없을 정도의 것이지

 

유감스럽지만 진실은 거의 모든 경우 멍청하게 보이거든

 

이곳 재판장은 상당히 자존심이 강했지만, 출세에 대해서는 그다지 연연해 하지 않았다. 그의 인생의 주된 목적은 시대의 선각자가 되는 것이었다.

 

너희가 남을 잰 그 저울로 너 자신도 재어지리라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검사의 논고, 변호인의 변론은 법률가들이라면 정독해볼 가치가 있을 정도로 감동적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57세에 쓰기 시작하여 죽기 직전에 완성한 이 작품은 44세에 시작하여 46세에 완성한 죄와 벌과는 차원이 다른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 자신도 자기의 창작물 가운데 새로운 進境을 보인 작품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일독을 권한다.

 

            2009. 11. 8.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