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

자작나무의숲 2008. 4. 8. 23:09

읽어도 잘 이해되지 아니하는 책이 있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읽다보면 윤곽 정도는 그려지는 책이 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나에겐 그런 책이다. 우선 니체는 1844년 프로이센에서 태어나  1900년 정신착란에 빠져 바이마르에서 사망할 때까지 결코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1882년 살로메에게 두 차례에 걸쳐 청혼하지만 거절당하고, 1887년 건강이 악회된 상태에서 살로메의 결혼 소식을 들으면서 우울증에 빠진다. 이 책은 차라투스트라가 여행을 다니면서 말하는 형식을 취한다. 차라투스트라는 페르시아의 배화교를 창시한 조로아스터의 독일식 발음이다.

 

우선 니체는 '신은 죽었다'를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마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제하는 것으로 신을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니체에게 중요한 개념은 인간의 자유의지다. 니체는 뚜렷한 목적 없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인생을 상정한다. 따라서 니체가 강조하는 초인은 자기를 극복하는 존재일 뿐 어떤 소명의식을 가진 존재로 상정하지는 아니한다.

 

인상 깊은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橋)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라는 데 있다.

 

재판관들이여, 그대들은 앙갚음이 아니라 동정심에서 범죄자를 처형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들은 사형을 집행하면서 그대들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도록 애를 써라!

 

국가가 없어지는 곳, 그곳에서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들의 삶이 시작된다.

 

위대한 일은 모두 시장과 명성을 모두 떠난 곳에서 일어난다.

 

아. 벗이여,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정의를 지키기보다는 자신의 불의를 인정하는 것이 더욱 고상하다. 자신이 정당할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다만 그대들은 그럴 수 있을 만큼 풍요로워야 한다.

 

정신은 자기 스스로 삶 속으로 파고들어 가고자 하는 삶을 말한다. 삶은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지식을 증대시킨다.

 

칭찬하는 자는 보답하려는 듯 꾸며대지만 사실은 더 많이 받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곳에서는 스쳐 지나가야만 한다!

 

'이것이 지금 나의 길이다. 그대들의 길은 어디 있는가'라고 나는 나에게 길을 물은 자들에게 대답했다. 말하자면 모두가 가야할 그런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나는 또한 초인라는 말을 길 가다 주웠으며,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어떤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서 인간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고, 새로운 아침 놀에 이르는 길로서 헹복에 겨워 자신의 정오와 저녁을 찬양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 스스로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 자는 복종해야만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명령을 내릴 수는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 복종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아직도 많다!

 

진실하다는 것, 그렇게 될 수 있는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아, 이 착한 자들! 착한 자들은 결코 진리를 말하는 법이 없다. 

 

그들, 이 착한 자들은 양보하고 참고 견딘다. 그들의 마음은 다른 사람을 따라서 말하고, 바닥에서부터 복종한다. 그러나 복종하는 자는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는다. 하나의 진리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착한 사람들이 악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 함께 모여야 한다.

 

아,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아는 자만이 어떤 바람이 적당하고 어떤 바람이 자신의 순풍인지를 안다.

 

아 차라투스트라여, 지상에서 자라는 것 중에서 높고 강한 의지보다 더 기쁜 것은 없다. 이 의지야말로 대지 위에서 자라는 가장 아름다운 식물이다.

 

내가 보기에 그대들은 아직도 충분히 고통받고 있지 않다! 그대들은 자신들 때문에 고통받을 뿐, 아직 인류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열정으로부터의 자유도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차가워진 정신을 믿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주제를 담고 있고 비유와 상징을 많이 사용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그러나 기존의 사상과 뚜렷히 구별되는 책임에는 틀림 없다.

 

        2008. 4. 8. 부산에서 문형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