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신영복의 '처음처럼'을 읽다

자작나무의숲 2008. 6. 10. 20:17

신영복의 서화에세이 '처음처럼'을 읽었다. 신영복님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있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숲',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나무야 나무야', '엽서' 등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쓴 바 있다. '처음처럼'은 1-2 페이지의 작은 공간에 신영복 선생의 서예와 그림이 글과 함께 실려 있다. 그 중에는 다른 책에서 이미 선을 보인 그림, 글도 실려 있다.

 

인상 깊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역경을 견디는 방법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하여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길밖에 없다고 할 것입니다. 수많은 처음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목이 잎사귀를 떨고 자신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성찰의 자세가 바로 석과불식의 진정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증오의 안받침이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냉철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이 그만큼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입니다. 현장이며 숲입니다.

 

觀海難水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합니다.

큰 것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함부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이상은 추락함으로써 싹을 틔우는 한 알의 씨앗입니다.

 

바다가 물을 모으는 비결은

자신을 가장 낮은 곳에 두는 데에 있습니다.

 

만남은 바깥에서 이루어집니다.

각자의 성을 열고 바깥으로 걸어 나오지 않는 한

진정한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도 반달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반달이 보름달이 될 수 있겠는가

보름달이 반달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은 그 얼마나 오만할 것인가(정호승의 시).

 

신영복의 글과 사상에 길들여 있는 사람들로서는 반가운 책이다. 가깝게 두고 두고 두고 읽은 만한 책이기 때문이다. 일독을 권한다.

 

      2008. 6. 10.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