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최인호의 '산중일기'를 읽다.

자작나무의숲 2008. 5. 16. 17:42

최인호의 '산중일기'를 읽었다. 최인호는 별들의 고향, 겨울나그네,상도를 쓴 소설가이다. 천주교 신자인 작가가 산사에 머물고, 스님에게서 법문을 듣고, 일상으로 돌아와 삶을 관찰하면서 깨달은 바를 쉽게, 진솔하게 적었다.

 

머리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山與靑山何者是 春光無處不開花

(세상과 청산은 어느 쪽이 옳은가, 봄볕이 있는 곳에 꽃피지 않는 곳이 없도다).

 

내가 머무르는 곳이 청산일 것, 하루하루의 생활이 산중일 것.

 

인상 깊은 대목은 다음과 같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商量해서는 아니 된다. 네 마음 속에서 봄 볕을 찾아라. 그리하면 어느 곳에서든 꽃이 필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어린이같이 되는 사람이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하는 곳에 우정은 존재한다. 또한 우정은 반드시 善 속에서만 존재한다. 왜냐하면 악한 사람들 속에서도 우정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이익이라도 얻을 수 있을 때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벗을 사귀고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

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벗은 만나기 어렵다.

자신의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은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불경)

 

친구들이 모두 나보다 훌륭하게 보이는 날,

이날은 꽃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하고 노닌다(시카와 다쿠보쿠)

 

눈은 다만 대상을 비출 뿐 보는 것은 마음이니라.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다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고 하셨느니라(부처의 보왕삼매론)

 

나를 죽이지 않는 한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할 뿐이다(니체)

 

벚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봐도

그 속엔 벚꽃이 없네.

그러나 보라. 봄이 되면

얼마나 많은

벚꽃이 피는가(일본의 선승 잇큐).

 

삶은 진리가 아니라 진실 속에서 살다가는 것이다.

 

작가의 다음과 같은 고백 앞에서 이 책을 쓴 이유가 혹시 타인을 위로하거나 타인으로부터 위로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우울증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마치 쉽게 사라지지 않는 요즈음 기침감기처럼. 그러나 나는 할 수 있다면 계속해서 쿨럭쿨럭 기침하면서 우울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볼 것이다'.

 

'일상과 욕망과 해탈에 관한 마흔 다섯 편의 선답에세이'를 읽었으니, 일상을 벗어나지도 아니하고 일상을 초월하지도 아니하고 일상에 매몰되지도 않는 방법에 관하여 고민해볼 차례이다.

 

                  2008. 5. 16.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