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한승원의 '차 한 잔의 깨달음'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7. 12. 19. 14:48

한승원의 '차 한 잔의 깨달음'을 읽었다. 한승원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초의' 등의 작품을 쓴 소설가이다. 이 책은 고향 장흥에 '해산토굴'이라는 집필실을 마련한 작가가 차를 만들면서, 차를 마시면서, 차를 나누면서 깨달은 바를 쓴 내용이다. 부록에는 초의선사가 쓴 다신전, 동다송이 붙어 있다. 다만 주의할 것은 작가가 말하는 차는 차나무에 딴 잎을 덖고 말려서 만든 차만을 말한다. 즉, 유자 우린 물이나 대추 우린 물은 차가 아니고, 공장에서 만들어 파는 '녹차'도 차가 아닌 셈이다.

 

작가는 첫머리에 '눈 앞을 가리는 꽃나무 잘라 없애니 석양 하늘 아래 아름다운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지네'라는 초의 선사의 시에 감화되어 차와 선을 배웠고 그 결과물이 이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차에는 두 가지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 하나는 탐욕과 오만과 미혹과 분노와 시기 질투와 복수심을 그치게(止) 하는 것, 다른 하나는 밝고 맑은 지혜로써 세상을 깊이 멀리 높게 뚫어보게(觀)하는 것이다. 즉 지관의 약이라고 요약한다. 흔들리면 술을 한 잔 했다는 이태백의 말에 빗대어 작가는 흔들리면 차를 마신다고 한다.

 

인상 깊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대 마음이 고요할 때에는

시장바닥이라도 산속이지만

그대 마음이 드셀 때에는

산속이라도 시장바닥일세

다만 하나의 마음에서

산속과 시장바닥이 갈라지네.

 

넓고 아득한 세상에

비린내 구중중한 냄새 코를 찌르는데

눈 속의 오묘한 향기, 그 신비

누가 찾아내랴.

 

정 다산은 술 마시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쇠하고 차 마시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부강할 것이라고 했다.

 

몸에 병 있음을 오히려 즐거워해야 한다. 몸에 병이 있으면 오만해지지 않고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다.

 

꽃 가운데 사람처럼 향기로운 꽃이 있을까. 짐승 가운데 사람처럼 잔인하고 무서운 짐승이 있을까

 

송나라때의 시인 황정견은 가장 이상적인 사람의 순수한 모습을 차를 우렸을 때의 배릿한 첫 향기라고 노래했다.

 

모든 화두들을 살펴보면 그들안에 흐르는 공통분모가 있다. 차별에서 평등으로 나아가기이다. 차별은 우김질하는 이념이고, 평등은 순리로써 아우르고 초월하기이다.

 

차와 선, 삶에 대한 작가의 체험과 생각을 말하고 있다. 차를 한 잔 하면서 읽으면 생각이 모아지고, 삶이 강건해진다.

 

        2007. 12. 19. 부산에서 자작나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