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역사)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7. 11. 30. 21:19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읽었다. 루스 베네딕트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 인류학과 교수로 근무했다. 1944년 6월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일본을 연구한 결과물이 이 책인데, 놀라운 것은 그녀가 일본을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은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틀로 국화와 칼을 제시한다. 국화는 일본의 황실을 상징하고, 일본인들은 나라꽃인 벚꽃보다도 국화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꽃들이 피지 않은 차가운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는 깨끗하고 청결하고 조용하고 엄숙하고 고귀하다는 생각에서다.  이런 국화를 사랑하는 일본인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저명한 국문학자로 서울대 명예교수인 김윤식님과 현재 서울대 교수로 있는 오인석님이다. 이들은 단순히 이 책을 번역만 한 것이 아니라 곳곳에 각주를 붙임으로써 이 책과 일본에 대한 이해를 더 높였다.1974년 처음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2006년 4판 18쇄까지 꾸준히 발간된 데에는 역자들의 공도 컸으리라 생각한다. 역자들은 평균적인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의 틀을 부끄러움의 인식에 놓인 문화라고 단정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관한 일본인의 견해를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일본은 일본 역사의 전체 기간을 통해 현저한 계급 카이스트적 사회라고 규정한다. 즉 황실과 궁정 귀족 밑에 신분순으로 사무라이, 농민, 공인, 상인의 네 가지가 일본의 카스트였다고 본다.

 

그 다음 저자가 일본 문화의 틀로 제시하는 것이 온(恩)이다. 온의 여러 가지 용법 전부를 관통하는 의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짊어질 수 있는 부담, 채무, 무거운 짐이다. 온은 갚아야 할 채무인 셈인데, 그 채무에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 기무(義務)와 기리(義理)로 나눌 수 있다. 기무는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결코 그 전부를 갚을 수 없고 또 시간적으로도 한계가 없는 의무인데, 대표적인 것이 천황에 대한 주(忠)와 양친에 대한 고(孝)다. 이에 반하여 기리는 자신이 받은 은혜와 같은 수량을 갚으면 되고, 또 시간적으로 제한된 부채를 말하는데  세상에 대한 기리와 이름에 대한 기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이름에 대한 기리는 명예의 일본식 변형으로서 모욕이나 핀잔을 받았을 때 보복 또는 복수하는 의무를 포함한다. 체면을 소중히 여기는 일본인에게 요구되는 自制는 이름에 대한 기리의 일부분이다. 어떤 경우에 자살은 이름에 대한 기리에서 당연히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행동방식이 된다.

 

일본인은 죄의 중대성보다도 수치의 중대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여러 가지 문화의 인류학적 연구에 중요한 것은 수치를 기조로 하는 문화와, 죄를 기조로 하는 문화를 구별하는 일이다. 도덕의 절대적 기준을 설명하고 양심의 계발을 의지로 삼는 사회는 죄의 문화라고 정의할 수가 있다......수치가 주요한 강제력이 되는 사회에서는 설사 참회승에게 과오를 고백하였다 해도 전혀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수치의 문화에서는 인간에 대하서는 물론, 신에 대해서조차도 고백한다는 습관은 없다......참다운 죄의 문화가 내면적인 죄의 자각에 의거하여 선행을 행하는 데 비해, 참다운 수치의 문화는 외면적 강제력에 의거하여 선행을 한다......미국에 이주한 초기의 청교도들은 일체의 도덕을 죄책감의 기초 위에서 두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현대 미국인의 양심이 얼마나 죄의식에 고민하고 있는가는 모든 정신병 의사가 알고 있는 바이다.

 

그외 이 책은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일본인은 매우 호의적으로 패전에 대한 일체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항복을 고한 천황의 조서 속의 표현을 빌린다면,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감당하고, 참을 수 없는 어려움을 참는 것이었다."

 

일본인은 자기 욕망의 만족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근대 일본인은 모든 세계를 지배하는 어떤 한 가지 덕목을 들 때는 성실을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여론에 좌우되지 말고 정치에 구애받지 말고 오직 한결같이 자기의 본분인 충절을 지키며, 의는 산보다 무겁고 죽음은 새털보다도 가볍다는 것을 기억하라

(군인칙유 제1의 계율) 

 

감정을 입 밖에 낸다는 것은 수치다. 그것은 자기를 속속들이 드러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대립된다는 교의이다.

 

禪은 아무 것도 모른 것이 아니고 아는 것은 모든 경전, 모든 문헌의 밖에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들은 일찍이 메이지 시대에 행한 것같이 제도 그 자체에는 조금도 비난을 퍼붓지 않고도 가장 철저한 변혁을 실현할 수가 있었다.

 

일본인은 양자 택일적인 윤리를 가지고 있다.

 

내용이 풍부하고 재미있다. 일본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깊게 하는 데 좋은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2007. 11. 30.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