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플루타크 영웅전(상)을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7. 8. 13. 21:42

플루타크 영웅전(상)을 읽었다. 여러 책에서 플루타크 영웅전이 언급되는데 호기심이 일어 플루타크 영웅전을 읽게 되었다. 플루타르코스는 고대 그리스 말기의 문인이고 아카이아주의 지사가 되기도 하였다. 이 책은 그리스와 로마의 유사한 영웅 23쌍의 대비열전과 4편의 단독 전기를 합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리쿠르고스와 누마를 비교한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리쿠르고스는 기원전 9세기의 인물로서 스파르타의 법령을 제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시행한 가장 중요한 개혁은 원로원을 설치한 것이었다. 중요한 국가 문제를 처리할 때 왕과 동등한 결정권을 갖는 원로원은 플라톤의 표현대로 나라에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기관이었다. 다음으로 그가 손댄 것은 토지를 재분배하는 일이었다. 세번째 개혁정책은 사치와 재물에 대한 욕망을 없애기 위한 결정타로서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식사하며 똑같은 빵과 고기를 먹게 했다. 리쿠르고스는 모든 시민을 소집한 뒤 델포이에 가서 신탁을 구하고 돌아오면 모든 것을 신의 뜻대로 행할 것이니 그 때까지 제정된 법을 잘 지키고 고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리쿠르고소는 델포이에서 아폴론 신에게 제사를 지낸 다음 자신이 제정한 법을 적어 스파르타로 보내고 스파르타인들이 영원히 그 서약을 저버리지 못하도록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누마 폼필리우스는 기원전 8~7세기 인물로서 로마의 왕이 되자 맨 먼저 로물루스가 늘 신변에 두고 있던 300명의 호위병을 해산시켰다. 그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싶지 않고 또 자신을 불신하는 백성은 다스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거칠고 강철 같은 로마인의 기질을 부드럽고 순하게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제사와 종교적인 행렬 및 춤 등을 이용했다. 누마의 정책 가운데 가장 칭송받는 것은 사람들을 직업에 따라 조합으로 나눈 것이다. 누마의 특별한 명에 따라 그의 시신을 화장하지 않고 두 개의 돌관에 넣은 뒤 야니쿨룸 산에 매장했다. 관 하나에는 누마의 시신이, 다른 하나에는 그가 저술한 종교 서적이 들어 있었다. 신성한 교리는 글로 남기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셔겨 두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책에서 리쿠르고스의 법이 오랫동안 지켜진 것은 바로 교육 덕분이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가 젊은이들의 마음에 애국심과 법의 정신을 철저히 심지 않았다면, 그 법은 500년 이상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고.

 

다음으로 눈여겨 볼 만한 영웅은 솔론이다. 그는 기원전 638년 ~ 539년 살았던 인물로서 법을 편찬하면서 "협정을 깨뜨려 얻는 것이 없을  때에는 그것을 지키기 마련이오. 내가 우리나라에 적합하 법을 만들면, 사람들이 그것을 깨뜨리는 것보다는 지키는 것이 더 이롭다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될 것이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비록 왕위는 거부했지만, 우유부단하게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다. 그는 강자에게 아부하지도 않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법을 제정하지도 않았다. 정책을 추진해 나갈 때에는  설득과 강권 두 가지 방법을 번갈아 썼다. 그는 모든 부채를 탕감해주고, 앞으로는 누구도 자신의 몸을 담보로 맡길 수 없게 했다. 그리고 솔론은 드라콘이 제정한 법 가운데 살인에 관한 것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모두 폐지했다. 그 법이 너무 엄격하고 가혹했기 때문이다. 솔론은 행정사무는 종전대로 부유층에게 그대로 맡겼지만, 빈민층도 다른 부분에 참여시키기 위해 시민의 재산 정도를 조사하게 하고 그 정도에 따라 1급, 2급, 3급, 4급으로 분류했다. 솔론의 법 가운데서 가장 특이한 것은, 정변이 일어났을 때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관망한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는 법이다.

 

이 책은 솔론을 포플리콜라와 대비시키고 있다. 포플리콜라는 본명이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로서 동료 집정관 브루투스의 장례식에서 추도연설을 하여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은 바 있는데, 그 후로 위대한 인물이 죽으면 추도연설을 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그 외에 음미할 만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당시 사람들은 아낙사고라스를 지성인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그가 철학자로서는 처음으로 세상만사를 운명이나 의무로 돌리지 않고 모든 것은 이성의 법칙을 따른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는 아낙사고라스를 매우 존경하며 이런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여, 그의 정신과 웅변이 저속함을 벗어나 고상해졌다.

 

그 무렵 아테네 시민들은 마라톤 전투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누구나 자기들에게도 큰일을 해낼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생각하며 누군가가 뛰어나다는 소리를 들으면 몹시 불쾌해 했다......"나는 아리스테이데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저 어딜가도 의인이라는 소리가 들려 그게 역겨웠소"라는 시민들의 뜻이 모여 추방결정이 내려지자 아리스테이데스는 아테네를 떠나게 되었다.

 

스파르타에서는 같은 사람이 두 번 군사령관직을 맡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라쿠스라는 사람에게 명목상 사령관직을 주고 리산데르에게는 부사령관 직함을 주되 지휘권을 갖게 했다.

 

플라타크의 영웅전은 계속된다.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에 대한 세밀하고 진솔한 묘사가  마치 현실 속에서 펼쳐지는 듯하다.

 

2007. 8. 13. 부산에서 문형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