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스크랩]상습 본드흡입 청년에 “삶 포기말라” 선처

자작나무의숲 2007. 8. 3. 21:08
상습 본드흡입 청년에 “삶 포기말라” 선처
피의자 아픈 과거에 법원 ‘용단’
2006년 08월 02일 (수) 김훤주 기자pole@idomin.com

법원이 법률로만 따진다면 징역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는 20대 청년에게 보기 드물게 직권으로 보석을 허가해주고 벌금형으로 선처해 화제다. 재판부는 또 ‘한 때 유혹에 빠지지 말고 삶을 포기하지 말라’며 책을 선물했다.

“풀어주면 안 된다는 검찰 의견도 맞고, 징역형을 선고한 1심 판단도 옳습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과거 불행에 주목하고 나아질 앞날에 기대를 걸겠습니다.”

창원지방법원 제3형사부(재판장 문형배 부장판사)는 7월 26일 환각물질 흡입으로 지난해 12월 23일 1심에서 징역 8월을 받고 항소한 박모(26)씨에게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이날 선고된 벌금은 박씨가 붙잡힌 지난해 11월 18일부터 직권보석으로 풀려난 올 4월 26일까지 160일을, 일당 5만원씩 노역장 유치로 환산한 금액이라 추가 부담은 없었다.

박씨는 이미 지난해 7월 음주운전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적이 있고 이번 일은 집행유예 기간에 생겼기 때문에, 벌금형이 안 나왔다면 앞선 형량까지 더해 꼬박 1년 징역을 살아야 할 뻔했다.

박씨에게는 이밖에도 전력이 더 있었다. 재판부가 채택한 창원보호관찰소 기록에 따르면 박씨는 17살 때 친구들과 어울려 본드를 마셨다가 처음으로 소년보호 처분을 받았다. 박씨는 횟수가 잦아지자 스스로 끊기로 결심하고 자수해 2년 동안 치료와 목공일을 겸했는데 19살 때 한 번 더 본드에 코를 들이대는 바람에 다시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

이런 사정만 보면 판결문대로 “기각해도 좋을 사안”이지만, 재판부는 공소장의 범죄 사실과 전과 기록에 눈길을 두면서도 ‘왜 다시 본드를 했을까’ 캐고 들어 ‘어린 시절 아픈 과거’까지 들여다보게 됐다.

항소한 청년에 “삶 포기말라” 선처

재판부는 판결에 앞선 조사에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16살 때 어머니가 재혼했으나 △여전히 집안이 가난해 함께 지낼 방이 모자랐고 △어머니와 동생만 새아버지와 같이 지낸 반면 △박씨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혼자 나와 살았음을 알았다.

또 박씨가 다시 본드를 한 데에는, 지난해 출소한 뒤에도 가족과 함께 지내지 못한 데다 무릎까지 다쳐 일을 못하는 바람에 생활고에 시달리기까지 한 배경도 있음을 알게 됐다. 가족은커녕 의지가지 하나 없이 몸을 다쳐 먹고살기 어려운데다 제대로 배우기조차 못한 20대 청년이, 현실을 잊으려고 자취방에서 다시 본드를 들이켰다가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지난달 26일 “어쭙잖지만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을 선물하려 한다. 재판부의 크지 않은 배려지만 인생에 도움이 되기 바란다”고 한 번 더 관심을 표현하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어 “마시멜로는 맛있는 과자인데, 당장 눈앞의 작은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유혹을 이겨내면 나중에는 비교조차 못할 정도로 큰 마시멜로를 성취할 수 있다는 내용”이라 소개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세 가지를 부탁했다. “첫째는 ‘포기하지 마십시오’입니다. 둘째도 ‘포기하지 마십시오’이고, 셋째 또한 ‘포기하지 마십시오’입니다.”

문형배 재판장은 1일 “징역이냐 아니냐보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고 법원이 병원·상담소 등을 활용해 이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며 “책 선물도 별나게 보이는 모양인데 사실 선배 판사한테 배웠을 뿐이고 혼자만의 전유물도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