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성찰)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중에서

자작나무의숲 2007. 7. 14. 10:00

2005. 10. 16. 읽은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중에서 인상 깊은 대목은 다음과 같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이 풀 무더기를 한 평만 떼어다 교도소 운동장으로 옮겨 놓을 수만 있다면....그렇 수만 있다면 운동시간 내내 그 풀밭에 머리를 박고 지낼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무릇 정성과 열심은 무언가 부족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만약 내가 온갖 풀이 무성한 수풀 가운데 살고 있는데도 이런 정성과 열심을 낼 수 있었을까?......이런 점에서 삭막한 교도소에서 만나는 상처투성이 야생초들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주는 귀중한 '옥중 동지'가 아닐 수 없다.

 

이 나라의 가장 민중적인 야생초 네 가지를 꼽으라 하면, 나는 서슴 없이 쇠비름, 참비름, 질경이, 명아주를 들겠다. 이 땅에 가장 흔할 뿐 아니라 모두가 식용으로, 또 민간 약재로 광범위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이 기막힌 색의 대비는 늦가을의 서늘한 공기와 강렬한 햇빛이 아니면 빚어낼 수 없는 대자연의 작품, 그것을 감히 그릴 수는 없고 여기에 스케치만 해 둔다. 나는 숨을 고르려고 하늘을 쳐다 보았다가 오히려 숨을 죽이고 말았다.

 

감잎, 두충잎, 쑥잎, 결명자, 이 네 가지만 가지고도 기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배합해 먹으면 한 겨울 질리지 않게 차맛을 즐길 수 있다.  

 

(황대권은 누구인가?

서울농대를 졸업하고 뉴욕 소재 사회과학대학원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학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13년 2개월 동안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이후 국가 기관에 의한 조작극이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야생초 화단을 만들어 100여 종에 가까운 풀들을 심어 가꾸며 징역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감옥은 더 이상 그에게 투쟁의 장소가 아니라 존재를 실현하는 곳으로 바뀌어 버렸다).

 

2007. 7. 14.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