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암송

서정주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자작나무의숲 2007. 6. 30. 11:08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좁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2004. 8. 7. 읽은 하이쿠 시인 마유즈미 마도카의 한국 종단기 '걸었다 노래했다 그리고 사랑했다'에 실린 서정주의 시다. 마유즈미 마도카는 일본의 하이쿠 시인인데 우연히 서정주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만나 한국 종단을 결심하게 된다. 그래서 2001년 8월, 11월, 2002년 4월, 7월, 10월 다섯번으로 나누어 철따라 부산역을 기점으로 서울시청 앞까지 한반도를 종단해 걸으며 이웃 사람들을 만나고 58수의 하이쿠를 지었다. 하이쿠란 열입곱자로 된 짧은 정형시 속에 계절감과 내면의 소리를 함축하는 시 형태로 일본 사람들의 독특한 미의식을 대표한다고 한다 . 작가가 한반도 종단의 초입 해운대에서 지은 하이쿠 하나를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친다.

新凉の打ち上けられし忘れ貝

초가을 바람 해변으로 밀려난 조가비 껍질 ) 

2007. 6. 30. 부산에서 자작나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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