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7. 5. 8. 22:33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었다. 이 책은 1805년 제1차 나폴레옹 전쟁 직전부터 시작하여 1820년까지 15년 동안에 걸친 러시아 역사의 중요한 시기를 재현한 역사소설이다. 뿐만 아니라 안드레이, 피에르 같이 신사상에 눈뜬 사람들의 고뇌와 실천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전쟁을 치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과 이별을 거듭하는 주인공들이 숨가쁘게 달려간다. 늘 전쟁이고 늘 평화인 세상사람들의 삶 속에서 전쟁 아래 평화는 어떻게 생존하는지, 평화 아래 전쟁은 어떻게 태어나는지에 관하여 주인공의 행동과 심리를 통하여 묘사하고 있다.

 

안드레이는 임신한 아내를 두고 전쟁에 참여하는데 그 사이에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다. 그 이후 안드레이는 나타샤를 사랑하게 되나, 몰락해가는 집안의 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가 반대하자 결혼에는 이르지 못하고 약혼만 한 상태에서 그녀와 떨어져 생활하게 된다. 그 사이에 아나톨이 나타샤 앞에 나타나고, 그녀는 아나톨과 사랑에 빠져 국외 도주를 꾀하다가 실패한다.

 

안드레이는 아나톨에게 복수를 할 생각으로 아나톨이 근무하는 군대로 복귀하여 전쟁에 참여하지만 중상을 입고 귀국을 한다. 우연하게 이를 안 나타샤는 용서를 구하며 안드레이를 극진히 간호하나 그의 죽음을 막지는 못한다. 그 와중에 안드레이의 동생인 마리아와 우정을 나누게 된다.

 

피에르는 베주호프 백작의 서자였으나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백작 지위를 상속하게 되고 매력적인 여자 엘렌(아나톨의 누이)과 결혼하나, 정숙하지 못한 엘렌의 행동으로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된다. 피에르는 백작 지위를 상속하자, 영지 내에 있는 농민들을 농노적인 관계에서 해방시킨다.

 

피에르는 전쟁포로로 잡혔다가 극적으로 살아 난 이후 안드레이의 사망으로 절망에 빠져 있던 나타샤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결혼하게 된다.

 

특히 피에르는 프랑스군에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역시 포로로 잡힌 플라톤 카라타예프라는 농부를 만나게 되는데 그를 정신적인 영웅으로 받아들인다. 플라톤은 산에 나무를 베러 갔다가 산지기에게 붙들려 매를 맞고 재판을 받은 결과 군대에 입대하게 된 농부로서, '한번 휴가를 얻어 집에 간 적이 있는데 집안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잘 살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선한 사람이다. 플라톤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주여 돌 같이 자고 빵 같이 일어나게 하소서'라고 중얼거리며 코가 땅에 닿게 절을 하는 사람이다. 그의 말과 행동은 모두 그도 모르는 활동의 표현이었다. 그 활동이 그의 생활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나날이 쇠약해져 결국 프랑스군에 의해 총살당한다.  

 

한편, 나타샤의 오빠인 니콜라이는 어릴적부터 소냐를 사랑하고 결혼까지 약속하지만, 어머니의 반대와 몰락하는 가문을 고려하여 소냐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고 우여곡절 끝에 안드레이의 동생인 마리아와 결혼한다. 그리고 농부들의 취향이나 소망을 깨닫고 농부들처럼 이야기하며 그 속에 숨을 뜻을 이해함으로써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대담하게 농부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나폴레옹이 악의 극으로 등장하여 선의 극으로 등장하는 플라톤 카라타예프라는 농부와 대비된다. 러시아군 총사령관 쿠투조프를 비롯한 500여 명 이상의 인물이 제 구실을 뚜렷하게 하며 등장한다.

 

이 책에는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사상적 문제에 대한 톨스토이의 고뇌가 곳곳에 등장하는데 몇 가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루이 16세는 죄인으로 몰려 처형되었으나, 1년이 지나자 루이 16세를 죽인 사람들 역시 무엇인가의 이유로 죽음을 당하지 않았던가? 대체 악이란 무엇이고 선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떤 힘이 만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행복하기 위해서는 행복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고 한 피에르의 말은 진리다.

 

그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에 희생을 하느냐가 아니라, 희생 그 자체가 기쁘고 새로운 감정이었다.

 

그는 오랜 군사적 경험과 노련한 예지에 의해 죽음을 걸고 싸우는 수십만의 인간을 혼자서 지휘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전쟁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총사령관도, 군대의 위치도, 대포의 수도 아니고, 오직 사기뿐인 것을 알고 있었다.

 

고통에도 한계가 있고 자유에도 한계가 있어서, 이 한계가 대단히 접근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순수하고 완전한 기쁨이 있을 수 없듯이 순수하고 완전한 슬픔도 있을 수 없다.

 

아름다워서 사랑하는 게 아니고, 사랑하니까 아름다운 거야.

 

    2007. 5. 8.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