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추천)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다시 읽고

자작나무의숲 2007. 3. 15. 19:06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명성 번역)'을 다시 읽었다. 창원에서 부산으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서점에 갈 여유가 없어 책장에 있던 '법의 정신'을 꺼내들었다.

 

몽테스키외는 보르도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고, 백부로부터 이어받은 고등법원장직을 버리고 문필활동에 전념하였다. 20여 년에 걸친 노력 끝에 법의 정신을 완성하였고, 출간 당시에도 22판을 거듭 발행할 정도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는 선험적 이론으로서는 법을 연구할 수 없고, 우리들이 생활하고 있는 구체적 현실의 상황에서 출발해야한다고 믿고, 영국 헌법의 원리를 분석하여, 개인의 자유는 국가권력이 사법, 입법, 행정의 3권으로 나뉘어 상호규제, 견제함으로써 비로소 확립된다고 하는 3권분립의 이론을 주장하였다. 또한 당시 프랑스가 로마법에 의해서 지배받고 있다는 비판의식에서 출발하여 각 민족의 정체, 풍습, 풍토 등에 적합한 법의 탐구에 집중하였다. 

 

몽테스키외는 정체를 공화정체 및 민주정체, 군주정체, 전제정체  세 가지로 나누고 각 정체의 본성과 원리를 분석한다. 그 결과 민주정체에서는 덕성을 필요로 하고, 군주정체에서는 명예가 중요하며, 전제정체에서는 공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입법자가 제정하는 법은 반드시 정체의 원리와 관련되어야 한다. 즉, 민주정체에서는 평등과 질박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법이 제정되어야 하고, 군주정체에서는 명예의 아버지이자 아들이기도 한 귀족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전제정체에서는 많은 법률이 필요하지 않고 다만 모든 일이 두 세가지 관념에 의거되고 있다. 사치금지법도 군주정체에서는 유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군주정체의 기본 구조를 볼 때 부가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으므로 부자가 소비를 하지 않으면 가난한 자는 굶어죽게 되기 때문이다.

 

민주정체의 원리는 사람들이 평등의 정신을 잃을 때뿐만 아니라, 극도의 평등 정신을 가져서 각자가 자기를 지배하기 위해 선출한 자와 평등해지려고 할 때에도 부패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은 자기가 위임한 권력까지도 견딜 수가 없어서 모든 것을 그 자신이 하려고만 한다. 군주정체는 국왕이 점차 여러 단체의 특권이나 도시의 특권을 빼앗았을 때 부패한다. 전체정체의 원리는 본성부터 부패되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부패해간다.

 

동일한 인간 또는 동일한 집정관 단체의 수중에 입법권과 집행권이 결합되어 있을 때는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재판권이 입법권과 집행권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에도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동일한 인간 또는 귀족이나 시민 중 주요한 사람의 동일 단체가 세가지 권력을 행사한다면 모든 것은 상실되고 말 것이다. 재판권은 상설적인 원로원에 부여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법률이 정하는 수속에 의하여 필요한 기관에 존속하는 법정을 구성해야 하고, 또 그러한 시민의 단체로부터 선출된 사람들에 의해서 행사되어야 한다. 재판소가 고정적이서는 안되지만, 판결은 그것이 법률의 정확한 조문이어야 한다는 정도로 고정적이야 한다. 재판관은 피고와 같은 신분의 사람 즉, 동년배여야 하는데, 그것은 피고가 자기에게 폭력을 휘두를 것 같은 사람들의 수중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더운 지방에서는 땀을 흘리기 때문에 혈액의 수분이 많이 발산된다. 따라서 음주를 금한 마호메트의 법은 아라비아 풍토의 법이다. 풍토에 기초를 두고 있는 종교는 풍토가 상반되는 바가 많은 나라에서는 뿌리를 내릴 수가 없으며, 만일 그것을 거기에 옮겨 심는다해도 그것도 곧 제거되었다.

 

군주가 국민에게 큰 변화를 일으키고자 할 때엔, 법에 의해 설정된 것은 법에 의해 개혁하고, 생활양식에 의해 형성된 것은 생활양식에 의해 변경해야 한다.  범죄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형벌이라는 방법이 있다. 생활양식을 변경하기 위해서도 방법이 있다. 모범이 그것이다. 형벌은 확실히 일반적 악의 많은 결과를 저지할 것이다. 하지만 이 악 자체를 제거하지는 못한다.

 

1566년 샤를 9세 치하에서 제정된 무랑의 칙령은 100리브르가 넘는 채무에서는 문서상의 증거가 없는 한 증인에 의한 증거수리를 금하였다.

 

내가 이 저작을 만든 것은 오로지 내가 다음에 말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즉 중용의 정신이 입법자의정신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선은 도덕적 선과 같이 언제나 두 극단 사이에 있다.

 

십이동판법은 추적당하던 절도범이 저항하면 죽여도 무방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은 절도범을 죽이는 자는 고함을 질러 시민들을 부르도록 명하고 있다. 시민의 안전과 자유에 이토록 어긋난 것이 되는 가능성을 가진 법은 시민들의 면전에서 집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법의 문체는 간단해야 한다. 법의 문체는 평이해야 한다. 법의 말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 같은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 법이 무엇인가를 고정시켜 두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는 될 수 있는 한 그것을  금액으로 정하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 법은 또한 너무 정묘해서는 아니 된다. 충분한 이유 없이 법을 변경해서는 아니된다. 어떤 법에서 예외, 제한,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런 것을 전혀 설정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낫다. 어떤 법에서 사물의 관념을 확정했을 때는 결코 모호한 표현으로  되돌아가서는 아니 된다. 법에는 청정함이 필요하다.

 

몽테스키외는 이 책에서 로마법, 모스크바 공국 법, 일본법, 중국법, 조선법을 비롯하여 동서고금의 자료를 인용하는데 그의 지적 노력에 저절로 탄성이 인다. 그가 이 책에서 내내 주장하는 것이 어느 나라에 선한 법이 다른 나라에서는 악한 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이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을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년을 통해서 100에퀴를 넘지 않는 한 약간의 선물을 받아도 좋다는 것을 관리에게 허용한 로마의 법은 결코 좋은 법이라고 할 수 없다. 아무 것도 받지 않는 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지만, 약간이니마 받은 자는 얼마 안 가서 그보다 조금 더 받기를 바라고, 이어서 많이 받기를 바라게 된다. 게다가 아무 것도 받아서는 안되는데 무엇인가를 받는 자의 유죄를 증명하는 쪽이, 보다 적게 받아야 할 텐데 보다 많이 받은 자,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항상 구실이나 변명을 찾아내는 자의 유죄를 증명하기보다 쉽다.

 

그 어느 정체에서도 재판절차들은 시민의 명예, 재산, 생명, 자유가 중시될수록 증대한다.  

 

악행에 대한 가장 무거운 벌은 그것을 인정하게 하는 일이다.

우수한 입법자는 죄에 대하여 벌하기보다 그것을 예방하는 일에 힘쓰고, 체형을 과하기보다는 습속을 심는 일에 노력을 다할 것이다.

 

형벌을 받고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폭정의 결과이다.

 

형법은 서로 조화가 있어야 한다. 모스크바 공국에서는 도둑과 살인에 대한 형량이 같으므로 늘 살인이 행해진다.

 

은사장(恩赦狀)은 제한정체의 유력한 동력이다. 군주가 가지고 있는 이 사면권은, 현명하게 집행되면 훌륭한 효과를 갖는다.

 

시민의 자유는 주로 형법의 양호함에 의존한다. 단 한사람의 증인의 진술에 의거해서 사람을 사형에 처하는 법은 자유로서는 치명적이다. 이성은 두 사람의 증인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긍정하는 증인과 부정하는 피고로서는 가부가 같은 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제삼자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의 평온이나 안전을 교란하는 사항에 관해서는 숨은 행위도 인간의 재판 관할에 속한다. 그러나 신을 모독하는 일에 관해서는 공공연한 행위가 없는 경우 범죄 사실 또한 없다.

 

법은 외부적 행동 이외의 것을 처벌할 권리는 없다. 법이 명시적으로 처벌할 말을 선언하지 않는다면, 법은 말만을 가지고 사형에 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유는 주로 법이 명하지 않는 일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데 그 존재의미가 있다.

 

불편이 이익과 같을 때는 변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이익이 적어지고 불편이 심해질 때는 더욱더 변혁을 해서는 아니된다.

 

법에 관심이 많은 분들 특히 사법연수생을 포함한 법률가들에게 반드시 일독해주실 것을 권한다. 법의 정신을 읽지 않고 법률가가 되는 것은 토정비결 한 번 안 읽고 남의 사주 봐주는 것과  같다고 말하면 지나칠까?

 

             2007. 3. 15. 부산에서 자작나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