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지강유철님이 쓴 "장기려 평전"을 읽었다. 장기려는 실제적이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적 사랑과 한국 부산 청십자 의료보험조합 설립에 관한 공적을 인정받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였다.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장을 수십년 했다.
2. 발췌
장기려는 사랑이 없다면 이념은 쓰레기라고 했다.
장기려 때문에 고신대 의대를 선택했던 류영준(황우석 조작사건 제보자)은 진실과 국익이라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터에서 장기려의 정신으로 진실을 택하였고, 끝까지 버텼다.
칼 슈미트는 한반도에서 행위로서의 전쟁은 끝났는지 모르지만 상태로서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내가 환자 자신이면...'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아졌다. 특히 수술을 권할 때는 '나 같으면 이 병으로 수술을 받겠는가?' 하고 자문자답을 해 보고 결론을 내린다.
멤버들을 인간화시키는 매우 독특한 리더십이 장기려에게 있었다
ㅡ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시국 사건에 침묵했지만 그 행동은 출세만을 위해 도서관을 지키던 사람들의 비굴한 침묵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민주화 세럭이 독재자와 맞설 때 가난과 맞섰고, 가난한 자들을 절망시키는 질병과 맞섰다.
"나는 가난해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것 같아서 그러한 환자들을 위한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 서원을 지금 지키고 있다" 장기려의 고백이다. 그는 1927년에 세례를 받을 때 그 서원을 했다. 위에서 길게 인용한 글을 1986년에 썼으니 60년이 넘는 동안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살았다는 이야기다.
우리 아버님이 여기서 딴 사람을 돌봐 주면, 이북에 우리 가족을 딴사람이 돌봐 준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이북에 가족들이 잘된 것 같아요.
-둘째 아들 장가용
3. 소감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북에 두고 온 처와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재혼을 하지 않고 그들에게 못다한 사랑을 이웃에 베풀었다는 점, 서울대와 카톨릭대 의대 교수를 겸직할 때도 부산에 있는 복음병원 등에서 진료활동을 계속했던 점이다.
2025. 5. 3.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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