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괄
박상규, 박준영이 쓴 <지연된 정의>를 읽었다.박상규는 전 <오마이뉴스> 기자고, 박준영은 변호사다. 이 책은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의 재심을 청구한 변호인으로서 겪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앞의 두 사건은 재심사건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었고, 마지막 사건은 재심개시결정이 났지만 검찰이 항고한 상태다.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는 추천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법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오만하고, 기계적이며, 무능하다. 약자에겐 추상 같고, 강자 앞에선 봄눈 같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시스템이 제법 갖춰졌다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국에는 무죄 프로젝트라는 비영리단체가 그 결함을 바로잡는 역할을 하고 있다.'
2. 발췌
잘 생각하셨습니다. 사람은 때로 벼랑 끝에 서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살길이 열릴 겁니다('닥터K' 류영준)
변호사나 기자나, 그냥 보면 안 보이는 걸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줘야 해요.
그에게 "아무리 때리더라도 끝까지 '나는 죄가 없다.'고 항변해야죠"라고 뻔한 말을 했다. 최대열은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맞아 봤슈? 경찰봉으로 맞아 봤슈? 꼭 안 맞아 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니까!..."
사건 발생 약 2개월 뒤인 1999년 4월, 완주경찰서에 중요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나라슈퍼 할머니를 죽인 진짜 범인을 알고 있습니다"...진범 제보가 왔을 때 잘못을 바로잡았으면, 이 사건은 2개월 만에; 정리될 수 있었다. 20년 가까운 시간을 끌 필요도 없었다.
진범을 수사한 기록이 있으니, 법원의 재심 결정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냐고? 그 기록을 증거로 제출했음에도 대법원은 한 차례 재심을 기각했다.
국가가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은 삼례 3인조를, 고졸의 가난한 박 변호사가 사람으로 대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 박 변호사의 변론은 거기서 출발하고, 다시 거기로 향했다. 박 변호사는 그걸로 싸웠고, 그걸로 이겼다.
3년이 흘렀다. 약촌오거리에서 택시 기사를 살해한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가 군산경찰서 황상만 형사반장의 귀에 들어왔다.
억울하다면 항소심에서 10년형이 선고됐을 때 상고하면 됐을 텐데, 왜 포기했나요? / 목포교도소에서 같이 생활하던 방 식구들이 상고해 봤자 의미가 없다고 하여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최성필은 2심 재판에서 자신이 살인을 했다고 허위로 말했다. 국선변호인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최성필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죽였다고 해야 형을 깎을 수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최성필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음에도 어른들에게 거짓으로 용서를 구했다. 재판부는 자비를 베풀 듯 5년을 깎아 줬다. 2심 법원은 최성필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내가 다칠 거라고 수사하지 말라고 했죠" 그 싸움을 왜 했냐구 물었다. / 누명 쓰고 교도소에 있는 열다섯 살 아이가 불쌍하잖아요! 형사이기 전에 나도 자식을 둔 부모잖아요. 그 전에 인간이고요!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 말하자면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 다니는 거지.(하퍼 리, <앵무새죽이기> 중에서)
우리 인생은 지연됐다. 하지만 정의는 지연돼선 안 된다.
3. 소감
지은이의 글솜씨에 매료되어 단숨에 다 읽었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법률가들에게 특히 재조에 있는 법률가에게 한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
2017. 1. 12. 부산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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