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인문)

투명사회를 읽고

자작나무의숲 2014. 4. 11. 22:30

1. 개괄

현병철의 <투명사회>를 읽었다. 저자는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중인데 <피로사회>란 책으로 독일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이 책은 투명사회가 신뢰사회가 아니라,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새로운 통제사회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20세기 후반부터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부정성의 소멸과 긍정성의 과잉으로 요약된다. 부정성의 소멸 내지 축소로 나타난 현상 중 하나로 투명사회를 들고 있다.

 

2. 발췌

투명사회는 신뢰사회가 아니라 통제사회다.

 

모든 것이 공개된다면, 정치는 불가피하게 호흡이 짧아지고 즉흥적 성격을 띠게 된다. 정치는 잡담처럼 얄팍해진다.

 

투명한 관계는 모든 매력, 모든 활기를 잃어버린 죽은 관계이다. 완전히 투명한 것은 오직 죽은 자뿐이다.

 

경험은 타자와의 만남이다. 반면 체험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자기 자신만을 볼 뿐이다.

 

자신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을 잃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 그것을 버젓이 드러내놓고자 하는 욕망에 밀려 날 때, 통제사회는 완성된다.

 

투명성과 권력은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한다. 권력은 즐겨 비밀의 장막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기밀 유지의 관행은 권력의 기술 가운데 하나다. 투명성은 권력의 기밀의 영역을 해체한다. 그러나 상호 투명성은 오직 점점 도를 더해가는 영구적인 감시 경쟁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신뢰는 오직 지와 무지의 중간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내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신뢰란 것은 아예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투명성이란 모든 무지가 제거된 상태를 말한다. 투명성이 지배하는 곳에서 신뢰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신뢰 위에 세워진 사회에서는 투명성에 대한 집요한 요구가 생겨나지 않는다. 투명사회는 불신과 의심의 사회, 신뢰가 줄어들기에 통제에 기대하려는 사회다.

 

사람들은 자기를 노출하고 전시함으로써 열렬히 디지털 파놉티콘의 건설에 동참한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수감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여기에 자유의 변증법이 있다. 자유는 곧 통제가 된다.

 

존경은  공공성의 초석을 이룬다. 존경심이 사라지면 공공성도 무너진다. 공공성의 붕괴와 존경의 소멸은 서로에 대해 원인이자 결과이다.

 

존경은 이름과 결부되어 있다. 익명성과 존경은 양립할 수 없다.

 

카를 슈미트에 따르면 비상사태를 결정하는 자가 곧 주권자가 된다.

 

자제력은 공론장의 본질적 요소다. 또한 거리는 공론장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디지털 무리는 그 속에 영혼, 정신이 없다는 점에서 이미 군중과 다르다. 영혼은 모여들고 통합되는 성질이 있다. 반면 디지털 무리는 고립된 여러 개인으로 이루어진다.

 

전반적인 탈매개화는 대표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직접 나서려 하며, 자기 의견을 어떤 중개자도 통하지 않고 직접 발표하고 싶어한다.

 

전면적인 투명성은 정치적 커뮤티케이션을 느리고 장기적인 계획이 아예 불가능한 사건 구조 속에 욱여넣는다.

 

정신의 매체는 고요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고요를 파괴한다.

 

스마트폰은 즉흥성과 근시안적인 태도를 장려하고 긴 것과 느린 것을 소외시킨다.

 

우리는 휴가 때뿐만이 아니라 잠 속에까지 일의 시간을 들고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도무지 편히 잘 수가 없는 것이다.

 

페이스북 친구들도 무엇보다 숫자로 세어진다. 하지만 우정은 이야기다.

 

정보의 과다는 사유의 위축으로 귀결된다....사유를 위해서는 구분과 선별의 부정성이 필수적이다. 사유는 언제나 배제하는 작용이다.

 

3. 소감

현병철 교수의 책을 <피로사회>, <시간의 향기>에 이어 세 번째 읽었다. 특히 이번 책은 많은 질문을 던졌다. 부패와 정보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해왔던 투명사회의 이면을 이렇게 날카롭게 지적하다니 새삼 철학의 힘을 느꼈다. 당장 페이스북을 그만두어야 하나?

 

                        2014. 4. 11. 창원에서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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