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지리산에서 일출을 보았다

자작나무의숲 2011. 10. 9. 09:18

 

1. 법계사의 목침

  진주지원 사람들 7명이 지리산 등산에 나섰다. 퇴근 무렵에 택시를 타고 중산리에 도착하여 법계사로 출발하였다. 2시간만에 법계사에 도착하였다. 헤드렌턴이 너무 큰 정oo에게 독일광부같다고 놀렸다. 그는 언제나처럼 해맑게 웃었다. 달은 아름다웠고 별은 빛났다. 법계사에 여장을 풀고 차려주시는 저녁을 먹었다. 나물로만 구성된 식당은 화려하고 맛있었다. 베스킨라빈스게임(31게임)을 한 결과 2명을 뽑아 설거지를 하려고 했지만 보살님들이 극구 반대하여 실행하지는 못했다.

  방으로 돌아와 31게임, 눈치게임을 하였다. 신분이 어떠하건, 나이가 많건 적건 인간은 누구나 유희를 즐기는 존재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일행 중에는 환갑을 앞둔 분도 있었지만 나이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하였다. 

  8시쯤에 법계사 주지이신 관해스님이 방에 찾아 오셔서 녹차를 주셨다. 왜 지리산이 민족의 영산이라고 말하는 줄 아냐고 운을 떼셨다. (1) 백성들에게 삶을 제공하였다. 예를 들면,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와 백성들에게 따뜻한 무명옷을 준 곳이 산청이고, 유의태 선생이 허준선생을 가르치고 백성들에게 의술을 베푼 곳이 산청이며, 백성들에게 녹차를 처음 제공한 곳이 하동인데, 이곳들이 모두 지리산 품에 있다. (2) 지리산을 걷다보면 지혜의 눈이 열린다. 모든 문제는 나에게서 비롯되므로 그 해결 역시 내 마음을 바로 잡는 데 있다.

  법계사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이라고 한다. 1,450m 정도 되는 고지에 있다. 주지스님께서 가고 나서 3자로 된 단어 끝말 잇기 게임을 하였다. '씨받이' 다음 순서에 김oo이 '지구본'을 외쳤다. 김oo은 '씨바지'로 발음되니까 '지구본'을 할 수 있는거 아니냐는 가벼운 항의가 있었다.

  다음날 일정을 생각해서 11시쯤 잠자리에 들었지만, 나그네는 잠이 오지 않았다. 한 방에 6명이 잤는데 수시로 들락날락 하는 소리도 거슬렸지만 무엇보다 걸리는 것은 목침이었다. 목침을 베니 아파서 잠을 깊게 잘 수 없었다. 다음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oo은 목침을 요 밑에 깔았더니 잘만했다는 것이었다. 아! 문제를 회피하는 사람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의 차이는 불면과 숙면이었다.

 

2. 천왕봉 일출

  3시 반에 알람을 설정해둔 김oo의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4시 예불 종소리를 듣고 이oo이 일행을 깨웠다. 서둘러 법계사에서 마련해준 주먹밥을 들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6시 남짓에 천왕봉에 도착하였다. 해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나온다 나온다 10번을 해야 애가 나오듯이, 나올 듯 나올 듯 10번을 한 뒤인 6시 20분쯤 지평선 위로 우리의 해가 떠올랐다. 천왕봉에 와있던 수십명이 환호를 저질렀다. 우리 일행 중에는 천왕봉 일출을 처음 보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3번째 일출을 보았다. 우스개 소리로 3대째 죄가 없어야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럼 나는 도대체 몇대째 죄가 없다는 말인가?

  천왕봉에서 3행시 짓기 놀이를 하였다.

천 천왕봉에 올라와 아랫마을 내려보니

왕 왕처럼 살것인가 거지처럼 살것인가

봉 봉o이 본받지말고 원장처럼 살아라

  하산길은 논란 끝에 계곡 방향으로 잡았다. 여름철에 큰 비가 온 탓에 하산길이 힘들었다. 당초 5시간으로 예정했으나 8시간 반이 걸렸다. 아침에 4시에 나서서 하산하니 오후 3시 반이었다. 무려 11시간 반이나 산 속에 있었던 셈이다. 수백년 된 주목나무를 보게 된 것은 고행 속의 행운이었다.

 

3. 추성결의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식당에 도착하여 막걸리를 마셨다. 천왕봉 일출을 보았다는 성취감에, 11시간 반을 헤맸지만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나는 막걸리를 벌컥 벌컥 마셨고 막걸리도 스스럼없이 나를 받아 주었다. 정oo는 지리산 천왕봉을 처음 올랐고 바로 그날 일출을 보았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는 생고생을 하며 천왕봉 일출을 보았다.  법원 생활 하는 동안 웬만한 어려움은 이 정신으로 극복하자' 누군가가 이어 말했다 '추성결의'를 하자는 거냐?

  지금 나는 무릎이 아프고 특히 계단을 오를 때 통증을 많이 느끼는 상태다. 그러나 내 마음은 통증이 전혀 없는 상태다.

 

         2011. 10. 9. 진주에서 자작나무(잘못 기억하고 있던 부분을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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