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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인터뷰 내용

자작나무의숲 2007. 2. 15. 09:37

"피고인에게 선물하는 책은 소통의 방법"
[인터뷰] '책 선물하는 판사' 문형배 창원지법 부장판사

'책 선물하는 판사'로 알려진 문형배(42) 창원지법 제3형사부 부장판사가 오는 21일자로 부산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3년간 창원지법에서 재판을 맡으면서 관심을 끌만한 선고를 해와 자주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창원지법은 지난해 전국 법원 가운데 처음으로 화이트칼라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마련했는데, 문 부장판사는 여기에 중심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문 부장판사는 14일 오후 판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화이트칼라범죄 양형기준을 만들고 책을 선물하게 된 배경 등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은 문형배 부장판사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 화이트칼라범죄 재판에 대한 양형기준을 만든 성과와 평가는?
"국회에서 외부인이 참여하는 '양형위원회'에서 효력을 주는 법률을 만들기로 하고 있는데, 창원지법의 양형기준은 그런 논의를 이끌었다는 계기가 됐다. 화이트칼라 범죄자는 판사들과 사회적 경험이 비슷하고 범죄에 대한 변명도 심정적으로 와닿는다. 게다가 전과가 없고 업무수행 중의 관행도 있다. 그렇기는 한데 그런 것을 다 뛰어 넘지 못하면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기는 힘들다.

양형기준이 법관 권한을 제약하는 면이 있지만, 순기능과 역기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단을 내릴 문제다. 양형기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교통사고나 음주운전, 필로폰 투약 등에 대해서는 양형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더 필요하다면, 기술적으로 가능한 한 확대해 나가야 한다.

2006년 3월경 회사 이사가 공금돈 23억원을 횡령했다가 사주와 합의를 했는데, 종전에는 합의가 되면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양형 기준을 만든 뒤에는 그 이사에 대해 징역 3년6월과 23억원 배상명령을 내렸다."

- 화이트칼라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다른 법원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양형기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양형기준을 만든다는 것은 법관의 권한을 제약하는 면이 있다. 그것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단을 내릴 문제다. 이제는 양형기준에 대해 논의는 된 것이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 화이트칼라범죄에 대해 재판하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
"화이트칼라범죄의 정의가 존경을 받는 사람들의 범죄 아니냐. 그 사람들은 판사와 사회적 경험이 비슷하다. 그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른데 대한 변명이 판사한테 심정적으로 와 닿는 면이 있다. 전과가 없고 업무수행 중의 관행도 있다. 그렇기는 한데 그런 것을 다 뛰어 넘지 못하면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기는 힘들다.

식물에 '리비히 법칙'(최소율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식물의 생산량(수량)은 가장 소량으로 존재하는 무기성분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법칙이다. 정치사회문화 여러 분야도 마찬가지다. 평균적인 게 우리 사회의 성장발전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가장 낮은 부분이 우리나라의 성장 발전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 부분을 해결해야만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 공무원 뇌물과 기업 임원의 횡령배임이 문제다. 이 분야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 사회가 더 높은 단계로 갈 수 없다. 과도기에는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창원지법에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은?
"집행유예 기간 중에 본드를 흡인한 청년이 있었는데, 보석을 허가하고 약물중독 치료를 받도록 알선했다. 재활 의지가 있다고 해서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 분이 제2의 인생이 살아갈까 궁금하다."

- 김정부 전 의원의 부인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었지만 오랫동안 법정에 출두하지 않은 속에 궐석재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은?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했을 뿐이다. 특별히 더 느낀 것은 없고 국회의원 부인도 법과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얼마 전 '석궁 습격' 사건에 상당수 국민들이 동정 내지 지지를 한 것이 충격적이었다. 그런 식이라면 헌법이나 법률은 무엇 때문에 있나. 법원이 잘못하는 것은 물론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다른 방법으로 개선해야 한다. 법원이 하고 있는 게 많다. 공판중심주의를 하고 있고, 국민사법참여·로스쿨 제도에 대해서도 찬성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전관예우'나 '유전무죄' 시비를 해소할 책임은 법원에 있다. 국민은 주권자고 법원은 위임받은 것이다."

- 피고인들에게 선고를 하면서 책을 선물한 사례가 많다.
"2005년 5월, 법정에서 20년 전에 헤어진 생모를 만난 피고인에게 책을 선물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책 선물은 소통의 방법이다. 법원의 문턱이 높다. 법관이 당사자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 며칠 전 선고 때는 '자살'을 반복하면 '살자'로 들린다며 피고인한테 '자살'을 10회 되풀이하도록 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된다는 글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었다. 선고를 하루 앞두고 산책을 하면서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혼자서 '자살'을 10번 정도 하니까 '살자'인지 '자살'인지 헷갈리더라."

- 그같은 소식이 언론에도 많이 보도되면서 관심이 높았는데.
"우리 사회에 살기 힘든 사람이 많은 줄 몰랐다. 이메일과 전화를 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상당수가 살기 힘든데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식으로 반응이 오는 것을 보고 우리 사회가 위로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살을 자신의 문제로 느꼈기에 반응이 컸다고 본다. 자살을 가볍게 여기거나 남의 문제로 여겼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판사를 한 이래로 가장 많은 이메일과 전화를 받은 것 같다."

- 2003년 부산지법 판사로 있을 때 사법개혁을 주창하기도 했던데 지금 생각은?
"덧붙일 말이 없다. 대법원장도 그 때 주장했던 것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나 화이트칼라범죄 엄중화도 대법원장이 앞장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면이 있다. 생동감 있는 재판을 주장했는데, 대법원장은 '공판중심주의'라 하고, 국민사법참여까지 받아들였다. 지금은 관련 법률이 필요한데, 국회가 결단을 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