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행
-도종환
처음 보는 사람과 한자리에 앉아서 먼 길을 갔습니다
가다가 서로 흔들려 간혹 어깨살을 부대기도 하고
맨다리가 닿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몇마디씩 말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한참씩 말을 않고 먼 곳을 내다보곤 하였습니다.
날이 저물어 우리 가야 할 길에도 어둠이 내리고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가 내려야 할 곳에서 말없이 내려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얼마쯤은 함께 왔지만 혼자 가는 먼 여행이었습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그런 것
처럼.
(도종환 시인의 '당신은 누구십니까' 시집에 실린 시다. 도종환 시인은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시인인데, 신경림 시인은 그를 일러부드러우면서도 곧은 시인이라고 표현하였다. 전교조 충북지부장으로 활동하다가 해직도 되고 감옥도 간 바 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시집은 1993년도에 산 것인데,이제껏 책장에 쳐박아두었다가 오늘 꺼내보니 여행이라는 시가 있어 소개한다.
혼자 가는 여행길에 누군가 만날 것 같은 설레임이 있고, 어차피 돌아와야 하는 일정상 만남은 이별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것이 혼자 가는 먼 여행이 아닌가 싶다.
2007. 3. 9. 부산에서 자작나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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