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지리산의 자리에서 노래하네
ㅡ박남준
바다가 바다인 것은 바닥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강물을 품어 주기 때문이네
산이 산인 것은
지리산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네
변치 않는다는 것이지
돌 속에서 돌을 꺼내 돌의 자리에 세우고
나무 속에서 나무를 꺼내
나무로 자라게 했기 때문이네
제자리에 있어야 하네
사람은 사람의 자리에
반달가슴곰은 반달가슴곰의 자리에 있어야 하네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산자락마다 깨알처럼 모여 사는 마을과 마을을
능선과 능선 너머
푸르고 푸른 첩첩의 산 능선을
그리하여 사랑의 처음처럼 거기 서 있는 지리산을
그 곁을 따라 그대와 나의 마른 꿈을 적시며
골짜기마다 풀어놓은
논과 밭을 키우고 흐르는 섬진강을
정녕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산을 향해 걸어가지 않으면
산이 불러 주는 노래를 들을 수 없다네
나무를 죽여 길을 낸 모노레일을 타고는
쇠말뚝을 박고 바벨의 철탑을 올려
산을 정복하려는 케이블카를 타고는
탐욕과 쓰레기 같은 망상으로 능선을 파헤치고
산사태를 일으키며 달리는 산악열차를 타고는
고요한 풍경이 내게 걸음을 멈추게 하는 소리도
영혼에 들려오는
그 빛나는 시간 앞에 마주서서
귀 기울일 수도 없네 무릎 꿇을 수 없다네
품 안을 내어주며
지친 걸음들 쉬게 하는 바위에 앉아 보지 않고는
돌 속의 돌, 돌 안에 누워 있으나
그대의 내면에 교감하여 일어 나오는 그대의 모습
꺼내어 보거나 만져 볼 수도 없을 것이네
작은 땀방울이 없이는
길 끝과 다시 또 길의 시작에 펼쳐지는 산과 산,
그리움을 잃지 않고 서 있는
산 속의 산, 산 밖의 산, 산 너머의 산,
지리산
너에게로 가는 푸른 길
꿈틀거린다 손짓한다 춤춘다
내 안의 바로 너
너와 함께 가는 발걸음이
내딛는 세상의 모든 시작이기를
나누는 사랑이기를
(박남준 시집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중에서 인용. 박남준시인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2025. 10. 4. 부산에서 자작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