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터 벨러스호프가 쓴 <문학 속의 에로스>를 읽었다. 지인이 추천한 책이다. 저자는 독일의 작가다. 이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아메리칸 사이코>까지 문학 속의 에로스를 비교분석하는데, 문학 속의 에로스를 생활 속의 에로스와 함께 관찰한다는 점이 특색이다. 좀 야한 부분도 있지만 소재가 에로스이니 불가피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천재적인 사람들은 여러 번 되풀이해서 사춘기를 겪는다. 다른 사람들은 평생 한 번만 젊지만(울리케)
스탕달의 세계관은 도덕이 아니라 美로 규정되었다.
그가 몰락하기 직전 이 순간만큼 그의 머리가 시로 가득 채워진 적은 없었다(스탕달의 <적과 흑> 중에서).
사랑을 하는 순간 가장 영리한 남자라도 어떤 사물이든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스탕달)
당신은 쓰레기더미에서 피어난 꽃입니다. 당신은 거위가 부화시킨 독수리 알이에요(베르니 부인이 발자크에게 한 말)
그(나폴레옹)가 칼로 이루지 못한 것을 --내가 펜으로 이루리라(발자크)
글쓰기란 자기 삶에 대한 재판이다(조셉 콘라드)
아주 올바른 것은 없다(테오도어 폰타네)
마지막에 프루스트는 동성애자로 커밍아웃 하였다.
프루스트는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혼란에서 자기 자신을 구원하였다. 바로 이런 혼란에서 그가 가장 깊은 통찰을 얻어 냈기 때문이다.
사실주의 작품에서도 사랑의 과정만큼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즉 애인들의 육체적 결합은 묘사되지 않았다.
금지와 압류를 통해 옛날 경계선을 지키고 문학에서 이루어진 의식의 변화를 막아보려는 시도는 번번이 새로운 것의 승리로 끝났다.
아무도 역사를 만들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볼 수가 없다. 풀이 자라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특히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와 헨리 밀러의 책들에서 문학에서도 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작가들은 성을 더는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보지 않고, 성에 주어진 새로운 의미에 맞게 그것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라이히의 확신에 다르면 성적으로 해방되어서 자기 통제를 할 수 있게 된 인간, 모든 소외 형식에 대해 예민해진 인간은 내면의 필요성으로부터 사회적인 상황도 변화시킨다.
경제 체제는 프로테스탄트 윤리 형태의 절약과 게산뿐만 아니라, 낭비에도 근거하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모스 <증여론> 중에서)
욕망의 현실적 목적은 서로 상대방을 압박해서 육체를 만발하게 하는 것이다(사르트르)
정열은 사라진다! 사랑은 남고, 꽃이 시들고 열매가 달려야 한다(존 업다이크)
인간은 오로지 진실 위에만 건물을 지을 수 있다(존 업다이크)
마광수, 장정일님의 '야한 소설'논쟁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에로스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의 소설이 그의 체험과 무관할 수 없다는 점도 엿볼 수 있다.
2010. 7. 23. 부산에서 자작나무